《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는 이미 변호사가 된 뒤 우리 앞에 나타난다.
서울의 대형 로펌에 취직하고,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고, 동료들과 사건을 해결한다. 넷플릭스도 이 작품을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여성이 대형 로펌의 신입 변호사가 되는 이야기로 소개한다.
현실의 자폐 이야기는 보통 그보다 스무 해쯤 앞에서 시작한다.
아이가 또래보다 말을 늦게 한다. 이름을 불러도 잘 돌아보지 않는다. 특정 행동을 반복한다. 부모가 병원을 찾고 검사를 받는다. 그리고 어느 날 진단명이 나온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한국의 2021년 발달장애인 실태조사에서 자폐성 장애는 평균 3.1세에 처음 발견됐고 평균 4.6세에 진단됐다. 같은 조사에서 자폐성 장애인의 30.5%는 모든 일상생활에서 도움이 필요했고, 27.5%는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영우도 자폐인이다. 이 사람들도 자폐인이다.
같은 이름 아래 삶의 모습은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현실을 볼 때 질문은 “우영우 같은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있나?”에서 끝나면 안 된다.
자폐 아이 한 명이 태어났을 때, 그 아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을 누가 실제로 떠맡는가?
진단 뒤 부모에게 생기는 두 번째 직업
한국에도 제도는 있다.
발달재활서비스가 있고, 장애인 활동지원이 있고, 특수교육이 있고, 가족지원과 주간활동, 긴급돌봄도 있다.
그러니까 “한국에는 자폐 지원제도가 없다”고 쓰면 틀린다.
장애인 이동권과 비슷하다. 장애인 콜택시도 있고 저상버스도 있고 지하철 엘리베이터도 있다. 문제는 지도 위에 표시가 있느냐가 아니다.
오늘 그걸 타고 원하는 곳까지 실제로 갈 수 있느냐다.
자폐 지원도 같다.
치료지원이 있느냐보다 우리 동네에서 지금 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돌봄서비스가 있느냐보다 부모가 직장을 계속 다니면서 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특수교육이 있느냐보다 아이에게 맞는 자리가 실제로 있느냐가 중요하다.
한국의 발달장애인 주 돌봄자는 부모가 78.6%였다. 그중 어머니가 66.2%, 아버지가 12.4%였다. 주 돌봄자의 평균 연령은 이미 56.6세였다.
이 숫자를 “한국 부모가 아이를 많이 돌본다” 정도로 읽으면 핵심을 놓친다.
진짜 질문은 부모가 아이를 돌보느냐가 아니다. 부모가 평생 시스템의 연결자까지 해야 하느냐다.
병원 예약을 누가 하나. 서비스 자격을 누가 확인하나. 신청서를 누가 쓰나. 학교와 치료기관을 누가 연결하나. 서비스가 끊기면 누가 다시 전화하나.
가족이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도를 직접 이어 붙이는 사람이 되는 순간, 서류상 복지와 실제 생활 사이의 거리는 길어진다.

같은 아이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미국의 장애인교육법 IDEA는 자격을 갖춘 장애학생에게 적절한 공교육과 특수교육·관련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두고 있다. IEP라는 개별교육계획에는 필요한 지원이 기록되고, 성인기로 넘어가기 위한 transition services도 다뤄진다.
학교 밖에는 Medicaid의 HCBS 같은 지역사회 기반 지원이 있다.
겉으로 보면 한국보다 훨씬 매끄러워 보인다.
그런데 미국에도 함정이 있다. HCBS는 주별 운영 차이가 크고 대기명단이 생길 수 있다.
즉 미국의 특징은 “제도가 완벽하다”가 아니라 권리를 제도화한 영역이 넓지만, 어느 주에 사느냐와 실제 공급량에 따라 체감이 달라진다는 쪽에 가깝다.
캐나다 정부는 자기 문제를 직접 적어놨다
2024년 캐나다 정부의 국가 자폐 전략은 자폐인과 가족이 서비스를 찾을 때 겪는 문제를 꽤 솔직하게 적었다.
긴 대기시간, 지역마다 다른 진단 절차, 부담스러운 본인부담, 일관된 치료서비스 접근의 어려움, 전문인력 부족.
캐나다도 제도가 없는 나라가 아니다.
문제는 제도가 있어도 들어가는 문이 너무 좁으면 가족에게는 없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 비교에서 이 지점은 중요하다. 좋은 제도를 복사하는 것과 그 제도가 제시간에 돌아가도록 사람과 예산을 공급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일본은 한국과 생각보다 닮았다
일본에도 아동발달지원, 방과후 데이서비스, 발달장애 지원센터 같은 제도가 있다.
그런데 일본 정부의 최근 장애복지 논의에서도 지역격차가 계속 지적된다. 18세 이후 학교를 졸업하면서 생기는 ‘벽’, 성인기의 낮 시간대 갈 곳, 취업, 자립, 부모 사후의 그룹홈 문제도 공식 회의에서 그대로 나온다.
이건 한국 부모들이 하는 질문과 아주 비슷하다.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면 어디로 가나. 부모가 늙으면 누가 돌보나. 부모가 죽으면 시스템은 계속 돌아가나.
일본은 좋은 비교대상이다. “한국 대 서양”이 아니라 비슷한 동아시아 사회가 같은 문제를 어떻게 풀고 있는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계획을 묶었지만, 시간이 문제다
잉글랜드에는 Education, Health and Care Plan, EHC Plan이 있다.
교육과 건강, 돌봄을 한 사람의 계획 안에 묶는 구조다. 부모 입장에서는 병원 따로, 학교 따로, 복지 따로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으로 들린다.
그런데 2025년 신규 EHC Plan 가운데 법정 처리기한인 20주 안에 발급된 비율은 46.1%였다.
좋은 제도가 있어도 절반 이상이 법정기한을 넘겼다는 뜻이다.
자폐 진단 대기도 길다. 잉글랜드 아동위원회가 확보한 2022~23년 자료에서는 지역사회 보건서비스를 통해 자폐 진단을 받은 아동의 평균 대기기간이 791일이었고, 거의 6명 중 1명은 4년 넘게 기다렸다.
이 사례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보여준다.
좋은 제도와 좋은 이용경험은 같은 말이 아니다.
독일은 서비스를 고르는 권리를 넓혔다
독일의 Personal Budget은 필요한 장애인 참여·돌봄 서비스를 정해진 현물서비스로만 받는 대신, 예산 형태로 받아 이용자가 직접 구매하고 구성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누가,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서비스를 제공할지 선택할 여지를 넓힌다.
자폐 스펙트럼 안에서도 필요한 지원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의사소통 지원이 중요하고, 누군가는 일상생활과 취업지원이 중요하며, 누군가는 많은 시간의 돌봄이 필요하다.
독일 모델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돈의 액수보다 서비스가 사람을 제도에 맞추는가, 제도가 사람의 생활에 맞춰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이다.
물론 독일 정부도 Personal Budget의 승인절차를 더 빠르고 덜 관료적으로 만들 필요를 계속 연구하고 있다. 선택권이 있어도 신청이 복잡하면 또 다른 장벽이 되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도 ‘승인’과 ‘이용’은 다르다
스웨덴의 LSS 체계에는 부모의 돌봄을 일정 시간 대신해주는 avlösarservice, 단기체류 korttidsvistelse, 성인의 특별주거와 주간활동 같은 지원이 있다.
특히 가정 내 대체돌봄은 부모가 휴식하거나 아이가 참여하지 않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명시된 목적이다. 낮뿐 아니라 저녁·밤·주말에도 제공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이건 중요한 차이다.
부모가 잠시 쉬는 것을 죄책감의 문제가 아니라 지원해야 할 생활의 일부로 본다.
그렇다고 스웨덴에서 승인만 받으면 바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스웨덴 감독기관 IVO에 따르면 2025년에는 이미 승인된 사회복지·LSS 지원을 3개월 넘게 실제로 받지 못한 결정이 1만7천 건 넘게 보고됐다.
자격이 있다. 승인도 났다. 그런데 사람이 없거나 자리가 없어 못 쓴다.
복지 선진국에서도 결국 마지막 승부는 공급이다.
결국 비교해야 하는 것은 제도표가 아니다
한국과 미국, 캐나다, 일본, 영국, 독일, 스웨덴의 제도 목록을 펼쳐놓으면 모두 꽤 많은 칸이 채워져 있다.
그래서 국가 비교는 “어느 나라에 무슨 제도가 있나”에서 멈추면 별 의미가 없다.
진짜로 비교해야 할 건 이런 것이다.
진단 후 첫 지원까지 얼마나 기다리는가.
부모가 몇 군데에 직접 전화하고 몇 장의 서류를 써야 하는가.
승인받은 서비스를 실제로 제공할 사람이 있는가.
서울과 지방, 수도와 소도시의 차이는 얼마나 큰가.
병원·학교·복지·취업이 서로 이어지는가.
부모가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도 서비스를 쓸 수 있는가.
아이가 학교를 졸업해도 다음 지원이 이어지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모가 없어도 시스템은 계속 작동하는가.
그게 실제 복지의 성능이다.

다시 우영우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다.
현실의 평균적인 자폐인의 모습을 대표하지 않는다. 모든 자폐인이 우영우처럼 말하고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드라마가 거짓말을 했다는 뜻도 아니다.
드라마는 가능한 한 사람의 삶을 보여줄 수 있다.
화면이 꺼진 뒤 우리가 볼 것은 다른 문제다.
한국의 2021년 발달장애인 실태조사에서 가족이 가장 많이 꼽은 어려움은 **‘보호자 사후에 대한 막막함’으로 34.9%**였다.
아이의 말이 늘까.
학교에 적응할까.
직업을 가질까.
혼자 살 수 있을까.
그 질문들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내가 죽고 나면?
좋은 사회를 판단하는 기준은 우영우 같은 천재 자폐인을 몇 명 만들어냈느냐가 아닐 것이다.
혼자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까지도 부모 한 사람의 희생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만들었느냐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 답은 복지제도 목록을 세어서는 알 수 없다.
제도가 있다는 것과 그 제도를 오늘 실제로 쓸 수 있다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긴 거리가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고 현실에 던질 질문은 어쩌면 이것이다.
우영우가 현실에 태어났다면 변호사가 될 수 있었을까?
그보다 먼저,
그 아이와 가족은 스무 해 동안 시스템과 얼마나 싸워야 했을까?
오늘의 한국어 표현
표현: 돌봄
로마자 표기: dolbom
뜻: 아이·노인·장애인 등 일상생활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원하는 행위와 책임을 폭넓게 가리키는 말.
사용 상황: 한국의 복지·가족·노동 문제에서 단순한 babysitting보다 훨씬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예문: 돌봄을 가족에게만 맡기면 부모의 삶도 함께 멈출 수 있다.
참고 출처
- Netflix, Extraordinary Attorney Woo official page — https://www.netflix.com/title/81518991
- 보건복지부, 「2021년 발달장애인 실태조사 결과 발표」 — https://www.mohw.go.kr/board.es?act=view&bid=0027&list_no=372831&mid=a10503010100&tag=
- 보건복지부, 장애인활동지원 — https://www.mohw.go.kr/menu.es?mid=a10710040700
- 보건복지부, 성인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 — https://www.mohw.go.kr/menu.es?mid=a10710041100
- 보건복지부, 발달장애인 가족휴식지원 — https://www.mohw.go.kr/menu.es?mid=a10710040600
- U.S. Department of Education, IDEA / Transition Services — https://sites.ed.gov/idea/regs/b/a/300.43
- Medicaid.gov, Home & Community-Based Services — https://www.medicaid.gov/medicaid/home-community-based-services
- Public Health Agency of Canada, Canada’s Autism Strategy — https://www.canada.ca/en/public-health/services/publications/diseases-conditions/canada-autism-strategy.html
- 일본 후생노동성, 사회보장심의회 장애자부회 회의록 — https://www.mhlw.go.jp/stf/newpage_70397.html
- GOV.UK, Education, Health and Care plans statistics 2026 — https://explore-education-statistics.service.gov.uk/find-statistics/education-health-and-care-plans/2026
- Children’s Commissioner for England, autism and neurodevelopmental waiting times — https://www.childrenscommissioner.gov.uk/resource/waiting-times-for-assessment-and-support-for-autism-adhd-and-other-neurodevelopmental-conditions/
- German Federal Ministry of Labour and Social Affairs, Persönliches Budget — https://www.bmas.de/DE/Soziales/Teilhabe-und-Inklusion/Rehabilitation-und-Teilhabe/Persoenliches-Budget/Fragen-und-Antworten-DGS/faq-persoenliches-budget.html
- Sweden Kunskapsguiden, LSS support — https://kunskapsguiden.se/omraden-och-teman/funktionshinder/insatser-enligt-lss/om-insatser-och-stod-enligt-lss/
- Sweden IVO, unimplemented SoL/LSS decisions 2025 — https://www.ivo.se/statistik/ej-verkstallda-beslu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