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묻고 더블로 가!

《타짜》의 명대사를 따라 타짜, 호구, 앞전, 빠꼼, 공사, 꽁지, 기리, 탄, 개평, 오링, 쇼당 같은 도박판 은어를 장면 속에서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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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더블로 가!”

“나 이대 나온 여자야.”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타짜》는 영화를 안 본 사람도 대사는 아는 영화다. 그런데 다시 보면 명대사만큼 귀에 걸리는 게 있다. 등장인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말들이다.

타짜, 호구, 앞전, 빠꼼, 공사, 꽁지, 기리, 탄, 개평, 오링, 쇼당.

영화는 이 단어들을 멈춰 세워 설명하지 않는다. 그 세계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아듣는다는 듯 지나간다. 처음 볼 때는 대충 분위기로 넘겼던 말도 뜻을 알고 나면 장면이 훨씬 또렷해진다.

타짜와 호구 사이에도 사람이 더 있다

영화 제목인 타짜부터 판의 말이다. 단순히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화투 기술과 판 읽는 법으로 먹고사는 전문 도박꾼을 가리킨다. 영화의 자문을 맡았던 실제 타짜 장병윤도 자신을 ‘전문도박꾼’이자 ‘도박기술자’였다고 설명했다.

반대편에는 호구가 있다.

지금은 손해를 잘 보는 사람, 부탁을 거절 못 하는 사람에게도 “호구”라고 하지만 도박판에서는 훨씬 구체적이다. 장병윤은 호구를 돈이 있고 도박을 좋아하는, 타짜들의 먹잇감이라고 설명했다. 《타짜》에서 호구는 단순히 실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이미 누군가에게 선택된 사람이다.

그 사이에 앞전도 있다. 정마담은 박무석을 두고 곽철용 쪽 앞전 선수로 뛴다고 말한다. 앞전은 판에 실제로 앉아 패를 잡고 승부를 뛰는 쪽을 가리킨다. 돈을 대는 사람, 판을 만든 사람과 실제로 패를 잡는 사람이 꼭 같은 사람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리고 곽철용 쪽 사람들은 박무석을 두고 빠꼼이라 부른다. 손기술의 최고수라는 뜻보다는 이 판에서 구를 만큼 굴러 눈치와 사정을 아는 사람, 쉽게 말해 판을 아는 사람에 가깝다.

그래서 《타짜》에서 반복되는 선수, 기술자라는 말도 그냥 “화투 잘 치는 사람” 정도로 들으면 반쪽짜리다. 누군가는 판을 짜고, 누군가는 사람을 데려오고, 누군가는 돈을 대고, 누군가는 앞에 앉아 패를 잡는다.

판은 우연히 열리지 않는다

정마담이 고니에게 말한다.

전주·군산 쪽에 공사를 시작했는데 기술자가 없다고.

건설공사 얘기가 아니다. 도박판에서 공사는 호구를 판에 앉히고 돈을 빼내기 위해 여러 사람이 역할을 나눠 움직이는 작업을 뜻한다. 장병윤은 실제 판에서 정마담 같은 설계사를 포함해 8~10명이 공사를 벌이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니까 설계는 사람과 상황을 만드는 쪽이고, 공사는 그렇게 만들어진 판을 실제로 굴리는 쪽이다.

그 판이 상시적으로 굴러가는 장소가 하우스다. 그냥 친구끼리 화투 한 번 치는 방이 아니라 돈, 사람, 운영자와 자금줄까지 붙는 전문 도박장을 가리킨다. 장병윤은 전체 운영과 경비·보안을 맡는 사람을 하우스장이라고 설명했다.

돈이 떨어졌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영화 속 호구가 묻는다. 꽁지돈을 빌릴 수 없냐고. 고광렬은 “여기가 하우스예요? 꽁지가 있게”라고 받아친다.

꽁지는 하우스에서 높은 이자를 받고 도박자금을 대주는 사람, 꽁지돈은 거기서 빌리는 돈이다. 장병윤은 꽁지돈을 쓰고 나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정마담이 호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이 다시 판을 돌아 정마담에게 들어오고, 다시 호구에게 빌려주는 영화의 구조가 그래서 더 섬뜩하다. 돈을 딴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돈이 돌고 빚만 커진다.

그리고 영화에서 판때기라는 말도 나온다. 곽철용네 판때기를 거덜 냈다는 식이다. 거창한 카지노가 아니라 지금 돈이 걸리고 사람이 붙어 있는 그 판 전체를 속되게 부르는 말이다.

손은 눈보다 빠르고, 말은 더 짧다

화투가 손에 들어오면 말이 더 낯설어진다.

기리.

곽철용과 고니의 판에서도 “기리하시죠”라는 말이 나온다. 화투를 섞은 뒤 다른 사람이 패를 한 번 잘라주는 동작을 말한다. 한국 화투판에서 오래 쓰인 표현이다.

탄.

탄은 좋은 패라는 뜻이 아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게 패 순서를 미리 만들어놓은 화투 묶음을 뜻한다. 실제 사기도박 사건과 《타짜》 자문 자료에서도 같은 의미로 등장한다.

그리고 아귀의 그 대사.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밑장빼기는 윗장을 주는 척하면서 밑장을 빼는 기술이다. 장병윤은 이것을 미싱, 밑식이라고도 불렀다고 설명했다. 그는 밑장빼기와 함께 낱장치기, 바꿔치기를 타짜의 기본 기술로 꼽았다.

영화에서 이런 속임수를 넓게 구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대편에 있는 말이 자연빵이다. 손기술이나 짜놓은 장치 없이 그냥 치는 판. 고니가 아귀와의 마지막 승부를 앞두고 자연빵으로 치겠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중요한 건 《타짜》가 이걸 마술쇼처럼 자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술 하나만 잘한다고 판을 먹는 게 아니다. 언제 손을 쓰고, 누가 옆에서 시선을 잡고, 어떤 사람이 의심하지 않게 만들 것인지까지 전부 판의 일부다.

죽고, 받고, 묻고, 태운다

돈을 걸기 시작하면 평범한 한국어의 뜻도 달라진다.

죽는다. 사람이 죽는 게 아니라 이번 승부에서 빠진다.

받는다. 상대가 건 금액을 맞춰 승부를 계속한다.

태운다. 판에 돈을 더 얹는다.

오링은 들고 온 판돈을 전부 잃은 상태다. 영화 속 호구도 오링이 된 뒤 꽁지돈을 찾는다.

개평은 돈을 딴 사람이 주변 사람이나 잃은 사람에게 조금 떼어주는 돈이다. 장병윤도 실제 타짜가 판을 보면서 ‘개평을 얼마나 줄 것인가’를 계산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영화에서 “개평 없다”는 말은 오늘 딴 돈에서 떼어줄 몫도 없다는 뜻이다.

파투는 판이 성립하지 않거나 무효가 되어 끝나는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곽철용의 대사가 나온다.

“묻고 더블로 가!”

여기서 묻는다는 건 질문한다는 뜻이 아니다. 앞 판에 걸었던 돈을 다시 가져가지 않고 그대로 판에 남겨두는 것. 거기에 다음 판의 돈을 더 얹으니 판돈이 커진다.

건조하게 풀면 이렇다.

그 돈 그대로 놔. 다음 판은 두 배로 간다.

그런데 김응수가 말하면 이상하게 경제용어가 아니라 협박처럼 들린다.

쇼당도 붙고, 사람도 붙는다

곽철용은 고니와 거래할 때 이런 말을 한다.

“이 경운 원래 쇼당이 안 붙지.”

쇼당은 화투판에서 판을 어떻게 정리할지 상대와 협의하는 상황에 쓰이는 말이다. 영화에서는 그 말을 그대로 사람 사이의 거래와 협상으로 가져온다. “네가 내민 조건으로는 협상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뉘앙스가 된다.

이런 식으로 《타짜》에는 도박 용어만 있는 게 아니다.

곽철용이 말하는 달건이는 건달을 뒤집어 부르는 뒷골목 말이고, 고광렬이 고니를 설명하며 쓰는 무데뽀는 앞뒤 재지 않고 밀어붙이는 성향을 뜻하는 오래된 속어다.

그래서 영화의 언어는 한 종류가 아니다.

화투판의 전문용어, 사기도박 조직의 은어, 건달들의 말, 부산·전라도 말투, 당시 일상 속 속어가 한데 섞여 있다. 이게 《타짜》 대사가 이상하게 ‘쓴맛’이 나는 이유 중 하나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는 은어가 아니다

그리고 정마담의 유명한 한마디.

“나 이대 나온 여자야.”

은어도 아니고 도박 용어도 아니다.

그런데 정마담이라는 사람을 이보다 빨리 설명하는 말도 없다. 불법 도박판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자기 안의 계급감과 자존심은 놓지 않는다. 경찰에 끌려가는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꺼내는 방패가 학벌이다.

《타짜》의 좋은 대사는 그래서 용어 자체가 멋있어서 좋은 게 아니다.

사람이 그 말을 왜 쓰는지가 정확하다.

곽철용은 돈을 말할 때도 협박처럼 말하고, 고광렬은 판의 은어를 농담처럼 흘리고, 정마담은 학벌 한 줄로 자기 세계를 세운다. 아귀는 기술 이름 하나를 입에 올리는 순간 사람 손목부터 걱정하게 만든다.

영화는 관객에게 “이 단어는 이런 뜻입니다”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호구를 호구라고 부르고, 앞전을 앞전이라고 부르고, 판이 깨지면 파투라 하고, 돈은 묻고, 더 태우고, 죽을 사람은 죽는다.

그래서 뜻을 모르고 봐도 재밌고, 뜻을 알고 다시 보면 대사가 한 겹 더 들린다.

그리고 그 모든 말을 제일 짧게 끝내버린 사람은 역시 곽철용이다.

묻고 더블로 가.

오늘의 한국어 표현

표현: 묻고 더블로 가
로마자 표기: mutgo deobeullo ga
뜻: 앞에 걸어둔 돈을 그대로 남겨두고 다음 판의 승부를 더 크게 이어가자는 말.
현재 사용: 실제 도박 뜻보다 “이미 한 선택에 더 크게 베팅한다”, “한 단계 더 세게 간다”는 농담과 밈으로 훨씬 널리 쓰인다.
주의: 원래 맥락은 도박판이다. 일상에서는 주로 과장된 농담이나 밈으로 사용한다.

참고 출처

핵심 질문과 답변

《타짜》에서 “묻고 더블로 가”는 무슨 뜻인가?

앞 판의 돈을 그대로 남겨두고 다음 판의 승부를 더 크게, 두 배로 이어가자는 뜻이다.

《타짜》의 은어는 영화가 만든 말인가?

일부 표현은 영화 이전부터 실제 도박판과 뒷골목에서 쓰이던 말이며, 영화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경우가 많다.

자주 묻는 질문

호구는 원래 무슨 뜻인가?

도박판에서는 돈이 있고 도박을 좋아해 타짜들의 목표가 되는 사람을 가리켰다.

꽁지돈은 무엇인가?

하우스에서 도박을 계속하도록 빌려주는 고리의 도박자금이다.

기리는 무엇인가?

화투를 섞은 뒤 다른 사람이 패 더미를 잘라주는 동작을 가리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