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아 씨 고구마네

찐고구마의 퍽퍽한 답답함과 사이다의 시원한 목넘김에서 나온 한국 인터넷 표현. 답답한 전개는 고구마, 통쾌하게 뚫리면 사이다가 되는 실제 감각을 설명한다.

frustrate

찐고구마를 물 없이 먹어본 적 있나.

맛은 있다.

근데 계속 먹다 보면 퍽퍽하다.

목이 막히는 것 같다.

답답하다.

그때 차가운 사이다 한 모금 마시면?

캬.

뻥 뚫린다.

한국 인터넷에서 고구마사이다도 거의 이 감각이다.

“아 씨 고구마네”

드라마를 보는데 주인공이 누명을 썼다.

범인이 누군지도 대충 안다.

증거도 있다.

말만 하면 된다.

근데 말을 안 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하다가 또 입을 다문다.

상대는 오해한다.

오해는 2화, 3화, 4화까지 계속 간다.

보는 사람은 미친다.

“아 씨 고구마네.”

여기서 누가 고구마를 먹었다는 뜻은 아니다.

보고 있으면 목 막히듯 답답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말을 하면 풀릴 것 같은데 말을 안 한다.

한 발만 움직이면 해결될 것 같은데 계속 제자리다.

서로 대화만 하면 끝날 일을 계속 오해한다.

이럴 때 고구마라고 한다.

왜 하필 고구마냐

찐고구마는 맛있다.

근데 물 없이 계속 먹으면 퍽퍽하다.

입안이 마른다.

목이 꽉 막힌 느낌이 든다.

그래서 한국어에는 오래전부터

“고구마 먹은 것처럼 답답하다.”

같은 감각적 비유가 잘 붙었다.

인터넷에서는 이걸 더 짧게 줄였다.

답답하다.

→ 고구마 같다.

고구마.

그래서 이런 말도 자연스럽다.

“이 드라마 고구마 너무 심한데?”

“주인공 왜 이렇게 고구마야.”

“와 고구마 100개 먹은 것 같다.”

고구마 개수를 늘릴수록 답답함도 같이 올라간다.

고구마 한 개.

조금 답답함.

고구마 100개.

제발 누구라도 말 좀 해.

사람도 고구마가 될 수 있다

상황만 고구마가 되는 건 아니다.

사람도 된다.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상대도 친구를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인다.

둘만 모른다.

친구가 말한다.

“걔가 나한테 매일 연락하긴 하는데… 그냥 친한 친구겠지?”

옆에서 듣던 사람:

“아 너 진짜 고구마다.”

이건 친구가 고구마처럼 생겼다는 뜻이 아니다.

답답하게 군다는 뜻이다.

또 어떤 사람은 문제가 생겨도 말을 안 한다.

도와주겠다고 해도 괜찮다고 한다.

그러다 일이 더 커진다.

이럴 때도:

“아 진짜 고구마네.”

가능하다.

슬프다고 다 고구마는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다.

주인공의 가족이 죽었다.

슬프다.

눈물이 난다.

근데 이건 그 자체로 고구마는 아니다.

고구마가 되려면 답답함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병에 걸렸다.

슬프다.

여기까진 그냥 슬픈 이야기다.

그런데 주인공이 생각한다.

“말하면 걱정할 테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야지.”

연인은 갑자기 자신을 피하는 주인공을 보며 생각한다.

“나를 싫어하게 됐나?”

둘은 6화 동안 오해한다.

시청자는 이미 모든 걸 안다.

이제 고구마다.

슬픔이 아니라

“말 한마디면 풀릴 일을 왜 계속 안 푸냐”

가 고구마를 만든다.

그러다 사이다가 나온다

악역이 회사에서 계속 갑질한다.

자기 실수를 직원에게 뒤집어씌운다.

주인공은 계속 참는다.

시청자는 슬슬 고구마 50개째다.

회의가 열린다.

악역이 또 말한다.

“이건 전부 저 직원 책임입니다.”

그때 주인공이 노트북을 돌린다.

메일 기록.

녹취.

지시한 날짜.

전부 있다.

그리고 한마디.

“이거 부장님이 직접 지시하신 건데요?”

정적.

악역 표정이 굳는다.

와 씨 사이다.

이게 사이다다.

한국어 사이다는 Sprite 같은 음료다

여기서 해외 독자가 한 번 더 헷갈린다.

영어의 cider를 생각하면 사과로 만든 술이나 음료가 먼저 떠오를 수 있다.

한국어에서 일상적으로 말하는 사이다는 그게 아니다.

Sprite 같은 맑고 달고 탄산 있는 음료를 떠올리면 된다.

특정 브랜드 하나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종류의 투명 탄산음료를 사이다라고 불렀다.

그래서 고구마를 먹다가 목이 막힐 때

차가운 사이다를 한 모금 마시는 장면이 딱 연결된다.

퍽퍽하다.

답답하다.

한 모금 마신다.

탄산이 터진다.

캬.

그 답답함이 내려간다.

그래서

답답함 = 고구마

속 시원한 해소 = 사이다

가 한 세트가 됐다.

사이다는 그냥 “문제가 해결됐다”가 아니다

여기도 중요하다.

드라마에서 문제가 해결됐다고 전부 사이다는 아니다.

예를 들어 악역이 조용히 다른 부서로 발령났다.

문제는 해결됐다.

근데 시청자가 기다리던 통쾌함은 없을 수 있다.

사이다에는 보통

“그래. 이걸 보고 싶었어.”

가 있어야 한다.

계속 갑질하던 사람이 공개적으로 자기 거짓말을 들킨다.

억울하게 당하던 주인공이 증거를 딱 내놓는다.

사람들이 드디어 진실을 알게 된다.

악역은 아무 말도 못 한다.

사이다.

그냥 해결이 아니라

막혀 있던 감정까지 같이 뚫려야 한다.

그래서 “사이다 발언”도 있다

사이다는 장면만 가리키지 않는다.

말에도 붙는다.

누군가 모두가 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말을 대신 해준다.

상사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다.

회의실이 조용하다.

한 사람이 말한다.

“그 일정이면 사람을 더 주셔야 합니다. 지금 인원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속으로 모두가 생각한다.

그래. 그 말.

이런 걸

“사이다 발언.”

이라고 부를 수 있다.

말 한마디로 답답하던 분위기가 풀린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사이다 장면.

사이다 전개.

사이다 캐릭터.

사이다 발언.

처럼 범위가 넓어진다.

고구마와 사이다는 거의 반대말처럼 움직인다

고구마가 계속 쌓인다.

주인공은 답답하다.

사람들은 말을 안 한다.

악역은 계속 이긴다.

오해는 풀리지 않는다.

그러면 댓글이 나온다.

“고구마 너무 심하다.”

“고구마 100개 먹은 것 같음.”

그리고 어느 순간 주인공이 제대로 반격한다.

댓글이 바뀐다.

“와 사이다.”

“드디어 사이다 나왔다.”

이 둘은 거의 한 세트다.

고구마로 막히고, 사이다로 뚫는다.

그래서 번역하면 감각이 조금 사라진다

영어로 고구마 상황을

frustrating

stifling

painfully frustrating

정도로 옮길 수 있다.

사이다 장면은

satisfying

refreshing

cathartic

정도가 가능하다.

뜻은 전달된다.

근데 한국어에는 음식과 음료의 감각이 같이 들어 있다.

고구마를 먹는다.

목이 막힌다.

사이다를 마신다.

뻥 뚫린다.

그래서 둘을 따로 외우는 것보다

한 장면으로 기억하는 게 훨씬 쉽다.

마지막으로 이것만 기억하면 된다

슬픈 장면을 봤다.

고구마? 꼭 그렇진 않다.

문제가 해결됐다.

사이다? 꼭 그렇진 않다.

보고 있는 내가

“아 답답해 미치겠네.”

가 되면 고구마.

그리고 그 답답함을

“그래! 바로 이거지.”

하면서 통쾌하게 뚫어주면 사이다.

한국 드라마 댓글에

“고구마 100개 먹은 것 같다.”

라고 써 있어도 놀라지 마라.

아무도 고구마 100개를 먹은 게 아니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하나다.

사이다 좀 줘.

참고 출처

핵심 질문과 답변

한국 인터넷에서 고구마는 무슨 뜻인가?

말이 안 통하거나 일이 풀리지 않아 보고 있으면 답답한 사람·상황·전개를 뜻한다.

사이다는 무슨 뜻인가?

막혀 있던 상황을 속 시원하고 통쾌하게 풀어주는 말·행동·전개를 뜻한다.

자주 묻는 질문

고구마 100개 먹은 것 같다는 무슨 뜻인가?

실제로 고구마를 먹었다는 뜻이 아니라, 상황이 너무 답답해서 목이 막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과장 표현이다. 숫자가 커질수록 답답함도 더 심하다는 느낌을 준다.

사이다 발언은 무슨 뜻인가?

모두가 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말을 누군가 대신 시원하게 해주는 발언을 뜻한다. 막혀 있던 분위기나 감정을 한마디로 뚫어주는 느낌에서 사이다라고 부른다.

한국어 사이다는 영어 cider와 같은 음료인가?

아니다. 한국어의 일상적 `사이다`는 보통 Sprite처럼 맑고 달며 탄산이 있는 청량음료를 가리킨다. 영어 cider의 사과 음료나 술과는 다르다.